날개 #5

[먹을 만하지?]

마지막으로 다른 사람과 음식을 먹은 느낌이 기억나지 않는다. 혼자 생활하기 시작할 때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이 식사시간이었다. 누구도 신경 쓰는 이가 없었지만 식당에 갈 때마다 강한 어색함과 이질감에 시달려 한참동안 인스턴트식품에 의존했었다. 그런데 이제는 사람과 마주앉아 음식을 먹고 있는 상황이 더 부자연스럽다. 어색한 몇 초가 지날 때마다 목이 졸려 옴을 느껴 겨우 몇 마디 꺼내다가는 이내 침묵이 이어진다.

[그런데 이름이 뭐였지?]

시간을 견디다 불쑥 실례가 되는 말을 꺼냈다. 관심 없이 한 번 지나친 사람들을 모조리 기억할 만큼 기억력이 좋지는 않다. 오히려 특별히 기억해야할 사람이 아니면 모두 기억에서 지우는 편이다. 눈앞에 있는 상대는 외모도 특별히 개성 있는 부분이 없어 몇 번 만났다 해도 먼저 아는척 해주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.

[뭐야,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지금껏 이야기 한 거야? 예전에 나와 만났던 일은 기억나니?]

[느낌이나 감정 같은 건 오래 지나도 이야기를 꺼내면 다시 떠오르는데 이름은 도무지 못 외우겠더라.]

그녀는 해물스파게티에 들어있는 새우 하나를 휘젓더니 입에 집어넣는다. 나도 포크를 들어 자연스런 포물선을 그리며 새우를 향한다. 뽀드득, 포크가 파고들자 새우 속에서 수많은 박테리아가 꿈틀거린다.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지루하게 음식물을 위 속으로 밀어 넣었다.

[최선희.]

스파게티의 끝을 보며 그녀가 말했다. 꼬돌꼬돌한 스파게티도 마음에 안 들고 소스마저 느끼하다. 꿈틀대던 박테리아들이 위산에 녹아내리며 노란 연기를 뿜는다.
네 이름 따위, 관심도 없어. 며칠 전 걸려온 전화의 주인공이 알고 싶을 뿐이야. 장담하는데 장난전화는 아니었어. 가느다란 전화선 너머에서 흔들리는 공기를 분명히 느꼈거든.

[혜원이 실종됐다는 게 무슨 말이야?]

무관심하기라도 한 듯이 최대한 시큰둥하게 말했다. 딱딱한 책이 입에서 튀어나올 것 같다. 선희는 포크를 내려놓고 상체를 약간 내밀었다. 이제 대화의 본론으로 들어가려나 보다, 하는 생각이 들었다.

[찾을 수가 없어. 혹시 연락 없었니?]

실종이란 말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크게 다르다. 연락이 두절되는 것쯤은 흔한 일이잖아? 오늘 당장이라도 전화번호를 바꾸고 모르는 장소에 작은 자취방이라도 잡으면 아무도 나를 찾을 수 없게 만들 수 있다. 그 정도의 노력까지 들이지 않더라도 휴대폰과 인터넷 아이디 몇 개 없애는 것만으로도 친구들과의 연락을 끊기에는 충분하다. 그렇다고 해서 나를 찾아나서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. 시간이 길어진다면 가족이야 걱정스레 찾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‘절대’라는 표현을 써도 충분하다.

[집에 연락해보면 되지, 뜬금없이 왜 나를 찾아와서 그래?]

혜원은 이미 오래전에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.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을 찾아야 할 거야. 연락이 안 되는 건 나도 마찬가지거든. 그런 줄 알면서도 그 사람이 이야기는 할 수가 없어. 그래서 짜증스런 얼굴로 앉아 있는 거라고.

[혜원이 부모님께 전화 해봤는데 지난 학기에 휴학 한 것도 모르셔. 얼마 전에 휴대폰을 잃어버리고는 연락이 잘 안된다고 하시더라. 휴대폰으로 전화 했더니 안 받아서 전화해본 거라고 말해놓긴 했지만 역시 집에도 알리지 않고 잠적해버린 모양이야.]

[스스로 숨은 사람을 왜 찾는 건데? 난 혜원이랑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야. 애인이 생겼다면서 사라진 다음부터 지금가지 한 번도 만난 적 없으니까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. 혼자 있고 싶어서 숨었으니 마음이 바뀌면 나오겠지. 안 그래? ]

자리에서 일어났다.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. 호흡이 조금 거칠어진 것도 같다.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상황으로 들어온 내가 한심스럽다. 난 빠지겠어. 도무지 말이 안 되잖아. 한번 본 사람이 찾아와서 1년 동안 만나지도 않은 사람이 사라졌다니.

[전화가 왔었어. 일주일 전에.]

말끝을 흐리며 선희가 말했다. 시선을 테이블로 내린 채 핏기 없는 얼굴이 비명이라도 지를 것만 같다. 머릿속에서 비명소리가 들린다. 일주일 전이라면 나 역시 같은 전화를 받았다. 전화를 받고 찾아다닌다는 건 무슨 의미지? 흔들리는 시선을 주체할 수가 없다. 힘겹게 자리에 앉으며 선희를 물끄러미 바라봤다. 그래 어떤 전화였어?

by 곤난해 | 2008/01/30 00:06 | stories(날개) | 트랙백 | 덧글(0)

트랙백 주소 : http://bluelimn.egloos.com/tb/1354674
☞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(트랙백 보내기) [도움말]

:         :

:

비공개 덧글

◀ 이전 페이지          다음 페이지 ▶